AI, 마케터 90%가 쓰는데, 성과는 제자리인 이유
도구가 많아질수록, 질문이 사라지고 있다

이상한 역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마케팅팀 회의실 풍경이 많이 바뀌었죠. 카피를 쓸 때 ChatGPT를 열고, 이미지를 만들 때 Midjourney를 돌리고, 광고 성과를 분석할 때 AI 대시보드를 띄웁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우리 팀에서 AI 쓰는 사람 있어?"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이제는 "AI 안 쓰는 사람 있어?"라는 질문이 더 어색할 정도예요.
실제로 세일즈포스(Salesforce)가 2026년 2월에 발표한 10번째 State of Marketing 보고서를 보면, 2025년 10~11월에 전 세계 마케팅 의사결정자 4,4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69%의 마케터가 고객에게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84%는 여전히 일반적인(generic)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1]. AI를 쓰고 있는 마케터가 75%에 달하는데도 말이에요.
그런데요,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AI 도구 사용률은 수직 상승하는데, 정작 마케팅 성과 지표는 올라가지 않고 있거든요. 세일즈포스의 바비 야니아(Bobby Jania) CM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술을 가지고, 더 많은 일방적 스팸을 더 빠르게 보내고 있다"고요[1]. 도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성과는 정체라니. 이건 좀 생각해볼 문제 아닌가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요리사에게 최첨단 조리 도구를 한꺼번에 열 개 쥐여줬다고 칩시다. 에어프라이어, 수비드 머신, 스팀 오븐, 자동 칼갈이... 도구가 많으니 더 맛있는 요리가 나와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요리사가 "이 재료에는 어떤 조리법이 어울리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기계 버튼을 누르는 시간만 늘어난다면? 음식의 맛이 나아질 리 없습니다.
"협업"이라는 이름의 위임
마케팅 현장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AI와 협업한다." 정말 멋진 말이에요. 사람과 기술이 함께 일한다는 뉘앙스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협업"이라는 단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실무 현장에서 목격되는 패턴은 이렇습니다. 브랜드 SNS 카피를 쓸 때 예전에는 마케터가 타깃 고객의 감정선을 고민하고, 브랜드 톤앤매너를 떠올리면서 문장 하나를 만들었어요.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브랜드가 왜 이 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지금은요? 프롬프트 한 줄 넣으면 30초 만에 카피 10개가 쏟아져요. 마케터는 그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걸 "선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왜?"라는 질문입니다.
왜 이 캠페인을 지금 해야 하는가. 왜 이 메시지가 이 타깃에게 통할 것이라 믿는가. 왜 이 채널이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에요. 그런데 도구가 워낙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다 보니,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답부터 받아드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인지심리학에서 이걸 설명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2011)』에서 설명한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구조예요[2].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려 합니다. 쉬운 해결책이 눈앞에 있으면, 굳이 어렵게 생각하려 하지 않죠. AI 도구가 3초 만에 그럴듯한 결과물을 보여주면, 우리 뇌는 "이 정도면 됐지"라고 판단해버립니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진 운전자가 도로의 구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편리해진 만큼, 근본적인 사고 능력은 퇴화하는 겁니다.
생산성의 착각, 숫자의 함정
"하지만 생산량은 확실히 늘었잖아요?" 이렇게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AI 도입 후 콘텐츠 생산량은 확연히 늘었어요. 업계에서는 AI 도입 후 콘텐츠 발행 빈도가 2~4배까지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흔하게 들립니다. 블로그 글, SNS 카피, 이메일 뉴스레터, 광고 배너... 양으로만 보면 대단한 성과죠.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많이 만든다고 많이 팔리는 건 아니거든요.
콘텐츠가 몇 배씩 늘어난 동안, 소비자의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입니다. 피드를 스크롤하는 속도만 빨라졌을 뿐이에요. 콘텐츠 공급이 폭증하면 개별 콘텐츠의 주목도는 오히려 떨어집니다. 경제학의 "수확 체감의 법칙"과 비슷한 현상이 콘텐츠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에요. 투입을 늘린다고 결과가 비례해서 늘지 않는 거죠.
더 주목해야 할 현상이 있습니다. 가트너(Gartner)가 2024년 7~9월에 418명의 마케터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가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지만 유의미한 혜택을 실현한 비율은 44%에 그쳤습니다[3]. 절반 이상이 AI를 쓰고 있으면서도 뚜렷한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게다가 같은 AI 도구에 비슷한 프롬프트를 넣으면, 결과물이 수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트너는 "브랜드에 맞는 콘텐츠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데 여전히 격차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어요[3]. 어느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캡션인지 로고를 가리면 구분이 안 되는 상황. 이건 "차별화"가 핵심인 마케팅에서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AI로 절약한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전략적 사고에 재투자하고 있나요, 아니면 더 많은 콘텐츠를 찍어내는 데 쓰고 있나요?
AI를 켜기 전에 합의하는 팀이 이기더라
잠깐 2026년의 마케팅 현장에서 눈을 돌려, 역사 속으로 가보겠습니다.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가 1960년대에 한 유명한 말이 있어요. "광고인은 소비자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60년도 더 된 말인데, 2026년에 더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AI 시대에 마케터의 본업은 더 선명해져야 합니다. 카피를 쓰는 것, 이미지를 만드는 것,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 — 이런 "만드는 일"은 이제 AI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냅니다. 그렇다면 마케터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흥미로운 단서가 있습니다. 가트너가 2025년 6~8월에 413명의 마케팅 기술 리더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생성형 AI를 단순히 '도구'로만 사용하는 마케팅 리더 중 유의미한 비즈니스 성과를 보고한 비율은 겨우 5%에 불과했습니다[4]. 5%예요. 도구만 열심히 쓴다고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데이터로 증명된 셈이죠.
성과를 가르는 건 AI를 얼마나 자주 쓰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과가 나는 팀을 관찰해보면, AI를 켜기 전에 먼저 "이번 캠페인에서 절대 잃으면 안 되는 브랜드 감정이 뭔가"를 합의하는 시간을 갖더라고요. 그 합의가 있으니까 AI가 내놓은 결과물 10개 중에서도 "이건 우리 말투가 아니다"를 걸러낼 수 있는 거예요. 합의 없이 AI를 켜는 팀은 가장 매끈한 문장을 고르게 되고, 매끈한 문장은 어느 브랜드에나 붙일 수 있는 문장이 됩니다.
"전략적 사고"란 시장의 흐름 속에서 우리 브랜드의 위치를 읽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는 능력입니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해줄 수 있지만,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해석하는 건 사람의 몫이에요. 같은 숫자를 보고도 어떤 마케터는 위기를 읽고, 어떤 마케터는 기회를 봅니다. 그 차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깊이에서 옵니다.
"브랜드 감각"이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이 톤이 우리 브랜드답다", "이 캠페인은 우리 고객의 감정선에 닿을 것이다"라는 판단. 이건 수천 번의 소비자 관찰과 시장 경험에서 오는 직관이에요. AI가 만든 카피 10개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결국 이 감각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감각 없이 고르면, 무난한 걸 고르게 되고, 무난한 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AI를 켜기 전, 10분의 질문이 먼저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마케터, 브랜드 담당자에게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첫째, 이번 주 안에 "AI에 맡기는 일"과 "내가 직접 하는 일"의 목록을 물리적으로 나눠보세요.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접어서, 왼쪽에는 AI에 맡겨도 되는 일(데이터 정리, 초안 생성, A/B 테스트 세팅), 오른쪽에는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캠페인 방향 설정, 타깃 감정선 정의, 브랜드 톤 최종 판단)을 적어보세요. 생각보다 오른쪽이 비어 있다면, 그게 바로 지금 성과가 정체된 이유일 수 있습니다.
둘째, AI를 켜기 전에 팀원들과 딱 10분만 "질문 회의"를 해보세요. "이번 캠페인에서 우리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뭔가?", "이 메시지를 경쟁사가 똑같이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 10분이 프롬프트의 품질을 바꾸고, 프롬프트의 품질이 결과물의 차별성을 바꿉니다. AI 활용 시간을 줄이라는 게 아닙니다. AI를 켜기 전에 "질문의 밀도"를 높이라는 겁니다.
셋째, 팀 회의에서 AI 활용 사례를 공유할 때 "이걸로 시간을 얼마나 절약했는가"가 아니라 "절약한 시간에 어떤 질문을 새로 던졌는가"를 물어보세요. 생산성의 기준을 "속도"에서 "질문의 빈도"로 바꾸는 겁니다. 이 질문 하나가 팀 전체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WK의 한 마디
"AI는 당신의 손을 빠르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은 더 많아졌나요, 아니면 더 줄어들었나요?"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도구를 켜기 전의 10분이 더 중요해집니다.
2026년 최고의 마케팅 도구는 AI가 아니라, AI 앞에서 "왜?"라고 먼저 묻는 마케터의 질문입니다.
[1] Salesforce, State of Marketing Report, 10th Edition (2026년 2월 발표) — 2025년 1011월 전 세계 마케팅 의사결정자 4,450명 대상 조사 [2] Daniel Kahneman, Thinking, Fast and Slow (2011) — "시스템 1(자동적·직관적 사고)"이 에너지 절약을 위해 깊은 사고를 회피하는 현상 [3] Gartner, Channels and Campaign Management Survey (2025년 2월 발표) — 2024년 79월 마케터 418명 대상 조사. 77%가 GenAI를 탐색하나, 유의미한 혜택 실현은 44%에 그침 [4] Gartner, 2025 Martech Survey (2025년 10~11월 발표) — 마케팅 기술 리더 413명 대상 조사. GenAI를 도구로만 사용하는 리더 중 유의미한 비즈니스 성과 보고 비율은 5%에 불과
마케팅으로 기업을 행복하게, 세상을 이롭게.
AI, 마케터 90%가 쓰는데, 성과는 제자리인 이유
도구가 많아질수록, 질문이 사라지고 있다
이상한 역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마케팅팀 회의실 풍경이 많이 바뀌었죠. 카피를 쓸 때 ChatGPT를 열고, 이미지를 만들 때 Midjourney를 돌리고, 광고 성과를 분석할 때 AI 대시보드를 띄웁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우리 팀에서 AI 쓰는 사람 있어?"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이제는 "AI 안 쓰는 사람 있어?"라는 질문이 더 어색할 정도예요.
실제로 세일즈포스(Salesforce)가 2026년 2월에 발표한 10번째 State of Marketing 보고서를 보면, 2025년 10~11월에 전 세계 마케팅 의사결정자 4,4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69%의 마케터가 고객에게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84%는 여전히 일반적인(generic)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1]. AI를 쓰고 있는 마케터가 75%에 달하는데도 말이에요.
그런데요,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AI 도구 사용률은 수직 상승하는데, 정작 마케팅 성과 지표는 올라가지 않고 있거든요. 세일즈포스의 바비 야니아(Bobby Jania) CM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술을 가지고, 더 많은 일방적 스팸을 더 빠르게 보내고 있다"고요[1]. 도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성과는 정체라니. 이건 좀 생각해볼 문제 아닌가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요리사에게 최첨단 조리 도구를 한꺼번에 열 개 쥐여줬다고 칩시다. 에어프라이어, 수비드 머신, 스팀 오븐, 자동 칼갈이... 도구가 많으니 더 맛있는 요리가 나와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요리사가 "이 재료에는 어떤 조리법이 어울리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기계 버튼을 누르는 시간만 늘어난다면? 음식의 맛이 나아질 리 없습니다.
"협업"이라는 이름의 위임
마케팅 현장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AI와 협업한다." 정말 멋진 말이에요. 사람과 기술이 함께 일한다는 뉘앙스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협업"이라는 단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실무 현장에서 목격되는 패턴은 이렇습니다. 브랜드 SNS 카피를 쓸 때 예전에는 마케터가 타깃 고객의 감정선을 고민하고, 브랜드 톤앤매너를 떠올리면서 문장 하나를 만들었어요.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브랜드가 왜 이 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지금은요? 프롬프트 한 줄 넣으면 30초 만에 카피 10개가 쏟아져요. 마케터는 그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걸 "선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왜?"라는 질문입니다.
왜 이 캠페인을 지금 해야 하는가. 왜 이 메시지가 이 타깃에게 통할 것이라 믿는가. 왜 이 채널이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에요. 그런데 도구가 워낙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다 보니,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답부터 받아드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인지심리학에서 이걸 설명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2011)』에서 설명한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구조예요[2].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려 합니다. 쉬운 해결책이 눈앞에 있으면, 굳이 어렵게 생각하려 하지 않죠. AI 도구가 3초 만에 그럴듯한 결과물을 보여주면, 우리 뇌는 "이 정도면 됐지"라고 판단해버립니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진 운전자가 도로의 구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편리해진 만큼, 근본적인 사고 능력은 퇴화하는 겁니다.
생산성의 착각, 숫자의 함정
"하지만 생산량은 확실히 늘었잖아요?" 이렇게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AI 도입 후 콘텐츠 생산량은 확연히 늘었어요. 업계에서는 AI 도입 후 콘텐츠 발행 빈도가 2~4배까지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흔하게 들립니다. 블로그 글, SNS 카피, 이메일 뉴스레터, 광고 배너... 양으로만 보면 대단한 성과죠.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많이 만든다고 많이 팔리는 건 아니거든요.
콘텐츠가 몇 배씩 늘어난 동안, 소비자의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입니다. 피드를 스크롤하는 속도만 빨라졌을 뿐이에요. 콘텐츠 공급이 폭증하면 개별 콘텐츠의 주목도는 오히려 떨어집니다. 경제학의 "수확 체감의 법칙"과 비슷한 현상이 콘텐츠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에요. 투입을 늘린다고 결과가 비례해서 늘지 않는 거죠.
더 주목해야 할 현상이 있습니다. 가트너(Gartner)가 2024년 7~9월에 418명의 마케터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가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지만 유의미한 혜택을 실현한 비율은 44%에 그쳤습니다[3]. 절반 이상이 AI를 쓰고 있으면서도 뚜렷한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게다가 같은 AI 도구에 비슷한 프롬프트를 넣으면, 결과물이 수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트너는 "브랜드에 맞는 콘텐츠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데 여전히 격차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어요[3]. 어느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캡션인지 로고를 가리면 구분이 안 되는 상황. 이건 "차별화"가 핵심인 마케팅에서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AI로 절약한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전략적 사고에 재투자하고 있나요, 아니면 더 많은 콘텐츠를 찍어내는 데 쓰고 있나요?
AI를 켜기 전에 합의하는 팀이 이기더라
잠깐 2026년의 마케팅 현장에서 눈을 돌려, 역사 속으로 가보겠습니다.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가 1960년대에 한 유명한 말이 있어요. "광고인은 소비자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60년도 더 된 말인데, 2026년에 더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AI 시대에 마케터의 본업은 더 선명해져야 합니다. 카피를 쓰는 것, 이미지를 만드는 것,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 — 이런 "만드는 일"은 이제 AI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냅니다. 그렇다면 마케터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흥미로운 단서가 있습니다. 가트너가 2025년 6~8월에 413명의 마케팅 기술 리더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생성형 AI를 단순히 '도구'로만 사용하는 마케팅 리더 중 유의미한 비즈니스 성과를 보고한 비율은 겨우 5%에 불과했습니다[4]. 5%예요. 도구만 열심히 쓴다고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데이터로 증명된 셈이죠.
성과를 가르는 건 AI를 얼마나 자주 쓰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과가 나는 팀을 관찰해보면, AI를 켜기 전에 먼저 "이번 캠페인에서 절대 잃으면 안 되는 브랜드 감정이 뭔가"를 합의하는 시간을 갖더라고요. 그 합의가 있으니까 AI가 내놓은 결과물 10개 중에서도 "이건 우리 말투가 아니다"를 걸러낼 수 있는 거예요. 합의 없이 AI를 켜는 팀은 가장 매끈한 문장을 고르게 되고, 매끈한 문장은 어느 브랜드에나 붙일 수 있는 문장이 됩니다.
"전략적 사고"란 시장의 흐름 속에서 우리 브랜드의 위치를 읽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는 능력입니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해줄 수 있지만,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해석하는 건 사람의 몫이에요. 같은 숫자를 보고도 어떤 마케터는 위기를 읽고, 어떤 마케터는 기회를 봅니다. 그 차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깊이에서 옵니다.
"브랜드 감각"이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이 톤이 우리 브랜드답다", "이 캠페인은 우리 고객의 감정선에 닿을 것이다"라는 판단. 이건 수천 번의 소비자 관찰과 시장 경험에서 오는 직관이에요. AI가 만든 카피 10개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결국 이 감각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감각 없이 고르면, 무난한 걸 고르게 되고, 무난한 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AI를 켜기 전, 10분의 질문이 먼저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마케터, 브랜드 담당자에게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첫째, 이번 주 안에 "AI에 맡기는 일"과 "내가 직접 하는 일"의 목록을 물리적으로 나눠보세요.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접어서, 왼쪽에는 AI에 맡겨도 되는 일(데이터 정리, 초안 생성, A/B 테스트 세팅), 오른쪽에는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캠페인 방향 설정, 타깃 감정선 정의, 브랜드 톤 최종 판단)을 적어보세요. 생각보다 오른쪽이 비어 있다면, 그게 바로 지금 성과가 정체된 이유일 수 있습니다.
둘째, AI를 켜기 전에 팀원들과 딱 10분만 "질문 회의"를 해보세요. "이번 캠페인에서 우리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뭔가?", "이 메시지를 경쟁사가 똑같이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 10분이 프롬프트의 품질을 바꾸고, 프롬프트의 품질이 결과물의 차별성을 바꿉니다. AI 활용 시간을 줄이라는 게 아닙니다. AI를 켜기 전에 "질문의 밀도"를 높이라는 겁니다.
셋째, 팀 회의에서 AI 활용 사례를 공유할 때 "이걸로 시간을 얼마나 절약했는가"가 아니라 "절약한 시간에 어떤 질문을 새로 던졌는가"를 물어보세요. 생산성의 기준을 "속도"에서 "질문의 빈도"로 바꾸는 겁니다. 이 질문 하나가 팀 전체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WK의 한 마디
[1] Salesforce, State of Marketing Report, 10th Edition (2026년 2월 발표) — 2025년 1011월 전 세계 마케팅 의사결정자 4,450명 대상 조사 [2] Daniel Kahneman, Thinking, Fast and Slow (2011) — "시스템 1(자동적·직관적 사고)"이 에너지 절약을 위해 깊은 사고를 회피하는 현상 [3] Gartner, Channels and Campaign Management Survey (2025년 2월 발표) — 2024년 79월 마케터 418명 대상 조사. 77%가 GenAI를 탐색하나, 유의미한 혜택 실현은 44%에 그침 [4] Gartner, 2025 Martech Survey (2025년 10~11월 발표) — 마케팅 기술 리더 413명 대상 조사. GenAI를 도구로만 사용하는 리더 중 유의미한 비즈니스 성과 보고 비율은 5%에 불과
마케팅으로 기업을 행복하게, 세상을 이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