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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의 눈]프랑스는 옷을 고쳐 입는다, 한국은 아직 새 옷을 산다

프랑스는 옷을 고쳐 입는다, 한국은 아직 새 옷을 산다

수선 한 번에 7유로를 돌려주는 나라, 그 정책이 패션의 본질을 바꾸고 있다


옷장을 한번 열어보세요

요즘 옷장 정리를 해보신 적 있으세요? 한번 해보시면 재미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분명히 '꽉 차 있는데' 입을 옷은 없거든요. 태그도 안 뗀 옷, 한두 번 입고 밀려난 옷, 단추 하나 떨어져서 방치된 코트. 우리 옷장은 '소유'로 가득 차 있지만 '만족'은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지금 이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건드리고 있어요. 2023년 10월, 프랑스 정부는 의류·신발 수선비의 일부를 국가가 보조하는 "수선 보너스(Bonus Réparation Textile)"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의류 산업 확대생산자책임(EPR) 기금을 운영하는 친환경 인증기관 리팩(Refashion)이 실무를 맡고 있는데요, 구두 패치 부착에 8유로, 옷의 구멍·찢어짐 수선에 7유로, 안감 교체에는 10~25유로까지 보조금이 나옵니다. 2024년 7월부터는 보조 금액이 한 차례 인상되어, 간단한 수선 기준 기존 대비 약 두 배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옷을 고쳐 입으면 나라에서 돈을 돌려준다고?" 처음 들으면 좀 신기하잖아요. 그런데 이 제도, 단순한 환경 캠페인이 아닙니다. 프랑스 생태전환부(Ministère de la Transition Écologique)가 순환경제 촉진 전략의 일환으로 설계한 정식 산업 정책이에요. 그리고 이 정책이 실제로 프랑스 소비자의 패션 소비 패턴을 바꾸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리팩(Refashion)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제도 시행 후 1년간 82만 6,000건의 수선이 이루어졌고, 후반기 6개월 동안의 수선 건수는 전반기 25만 건 대비 거의 세 배로 급증했습니다. 2024년 말 기준 1,530개 이상의 수선업체가 인증을 받았으며, 이 중 30%는 브랜드 직영 수선 서비스입니다. 이 제도를 통해 프랑스 소비자들이 1년간 절감한 금액은 총 680만 유로에 달합니다. 소비자들이 새 옷을 사는 대신 가지고 있는 옷을 고쳐 입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고쳐 입는 게 새로 사는 것보다 매력적인 선택이 되면, 패션 브랜드는 어떻게 살아남을까요?


왜 '수선'이 패스트패션을 이기기 시작했나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수선이요? 그건 어르신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요?" 사실 한국에서 수선은 오래된, 좀 불편한 개념이잖아요. 동네 수선집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지퍼가 고장 나면 고치는 것보다 새 옷을 사는 게 더 빠르고 더 쌉니다. SPA 브랜드에서 비슷한 바지를 만 원대에 살 수 있는데, 누가 수선비를 내겠어요.

그런데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본질은 '수선이 싸졌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의 패션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이야기하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이미 가진 것에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거든요. 내 옷장에 3년째 걸려 있는 코트가 있다고 해볼게요. 객관적으로 보면 새 코트보다 가치가 낮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코트에는 '내가 고른 경험', '함께한 시간', '나만의 핏'이 담겨 있습니다. 수선 보너스는 이 심리를 정책으로 자극한 겁니다. "당신이 이미 가진 옷에 다시 투자하세요, 그러면 정부가 도와줄게요."

이 메시지가 프랑스 소비자에게 통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새 옷을 사는 건 '소유'를 늘리는 행위지만, 옷을 고쳐 입는 건 '만족'을 회복하는 행위거든요. 단추가 떨어져서 안 입던 코트를 수선하고 다시 꺼내 입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온라인몰에서 클릭 한 번으로 산 새 옷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마케팅 심리학에서 말하는 "경험적 가치(Experiential Value)"가 여기서 작동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건 MZ세대일수록 더 강하게 반응합니다. 유럽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프랑스·독일·영국 등에서 젊은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중고 의류 거래와 수선 서비스 이용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의 2024년 패션 산업 보고서 The State of Fashion에 따르면, 유럽 소비자의 상당수가 지속가능성을 패션 구매의 핵심 고려 요소로 꼽았고, 특히 젊은 세대에서 '오래 입기'와 '수선·리세일'에 대한 관심이 이전 세대보다 뚜렷이 높았습니다. 수선이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한국 패션업계에 던지는 구조적 질문

"그건 프랑스 이야기잖아요. 한국은 다르지 않나요?"

물론 다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패션 소비 시장 중 하나예요. 에이블리, 무신사, 지그재그 같은 플랫폼이 매일 수천 개의 신상품을 쏟아내고, 소비자는 스와이프 한 번에 새 옷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패션 시장 규모는 약 49조 원 수준이고, 환경부 통계 기준 의류 폐기물은 연간 수만 톤에 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변화가 한국 패션업계에 구조적 경고가 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EU는 2024년부터 "에코디자인 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을 채택하며 의류를 포함한 제품의 내구성·수선 가능성·탄소발자국 정보 공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제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역시 2027년경부터 주요 제품군에 적용될 예정이에요. 프랑스의 수선 보너스는 이 큰 흐름의 선봉에 있는 겁니다. 만약 이런 제도가 한국에도 도입된다면 —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3~5년 내에 유사한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 한국 패션 브랜드들은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우리 브랜드의 옷은 고쳐 입을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가 있어요. 패스트패션의 비즈니스 모델은 '빨리 사고, 빨리 버리고, 다시 사게 만드는 것'이거든요. 옷의 수명이 짧을수록 회전율이 올라가고, 매출이 나옵니다. 그런데 수선이 매력적인 선택이 되는 순간, 이 모델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소비자가 "이 옷, 고쳐 입을 만큼 좋은 건가?"를 묻기 시작하면, 그건 곧 "이 브랜드, 그만한 품질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거든요.

WK마케팅그룹에서 늘 이야기하는 "브랜드 3대 기반" — 생각, 품질력, 컨셉 — 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가격이나 프로모션이 아니라 브랜드의 본질적 경쟁력으로 소비자에게 선택받아야 한다는 원칙이요. 수선 가능한 옷, 오래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것은 결국 '품질력'의 문제이고, 그 옷에 수선까지 해가며 입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것은 '컨셉'의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 패션 브랜드가 점검해야 할 것

그렇다면 한국 패션 브랜드 담당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세 가지를 제안드립니다.

첫째, "고쳐 입을 가치"를 브랜드 설계에 넣어보세요. 제품 기획 단계에서 "이 옷은 3년 후에도 소비자가 수선해서 입고 싶어할까?"를 자문해보는 겁니다. 이건 단순히 내구성 이야기가 아니에요. 디자인의 시간 내구성, 소재의 수선 용이성, 그리고 그 옷에 담긴 스토리의 지속력까지 포함하는 질문입니다.

둘째, 수선·리페어 서비스를 비용이 아니라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하세요. 이미 해외에서는 파타고니아의 'Worn Wear', 누디진스(Nudie Jeans)의 무료 수선 서비스가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핵심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는 아직 드뭅니다. 지금 시작하면 선점할 수 있어요. 홍보비에 쓸 예산의 일부를 수선 서비스 구축에 돌려보는 건 어떨까요.

셋째, 소비자에게 '소유'가 아닌 '만족'을 팔고 있는지 점검하세요. 매 시즌 신상을 쏟아내는 것이 정말 소비자의 만족을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옷장의 혼란만 늘리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여러분의 브랜드가 진짜 싸워야 할 상대는 경쟁 브랜드의 신상품이 아닙니다. 소비자의 옷장에 이미 걸려 있는 옷들이에요. 그 옷들보다 더 오래 입고 싶고, 더 고쳐 입고 싶은 옷을 만들 수 있느냐 — 이것이 2026년 패션 브랜드에게 던져진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며 그것이 브랜드마케팅입니다.


WK의 한 마디

"당신 브랜드의 경쟁 상대는 옆 매장의 신상품이 아닙니다. 당신의 옷장에 이미 걸려 있는 옷입니다."

옷장에 옷이 들어간 순간, 경쟁 매대에 올라간 것이고 거기서 살아남는 옷, 버릴 수 없는 옷이 브랜드를 홍보하고 다른 제품을 사게 만듭니다. 한 벌이라도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옷, 수선해서라도 입고 싶은 브랜드를 만드는 힘, 그게 브랜드마케팅입니다.



[1] Refashion 2024년 연간 보고서 — 수선 보너스 1주년 실적 집계 (826,000건, 1,530개 인증업체) [2] FashionUnited France, "Bonus Réparation : quel bilan après un an?", 2024.12.05 [3] 프랑스 경제부(economie.gouv.fr) 수선 보너스 공식 안내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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