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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의 눈]성분표가 아니라 비교 대상을 보고 지갑을 연다

성분표가 아니라 비교 대상을 보고 지갑을 연다

같은 성분, 같은 공장, 그런데 가격은 열 배 — 무엇과 비교하느냐애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편의점, 드럭스토어,백화점울 다녀보신 분들은 다 알겁니다. 기초 선크림 하나가 5천 원대에 놓여 있고, 바로 옆 드럭스토어에 가면 비슷한 SPF·PA 등급의 선크림이 2만 원대입니다. 백화점 1층에 올라가면 같은 자외선 차단 기능을 가진 제품이 8만 원, 때로는 15만 원을 넘기기도 하죠.

물론 선크림 가격이 성분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SPF50+/PA++++ 등급이라 해도 자외선 차단 필터의 조합, 제형 안정화 기술, 사용감, 임상 설계, 유통 채널, 용기에 따라 원가와 판매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차이의 상당 부분은 성분표보다 "이 제품을 어떤 문제 해결 도구로 보느냐"라는 프레밍에서 벌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브랜드 파워" 한마디로 설명하려 합니다. "그야 고급 브랜드니까 비싼 거 아니야?" 이렇게요.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요? 만약 브랜드 이름만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면, 유명 브랜드가 내놓는 모든 제품이 다 비싸게 팔려야 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죠.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이건 비싸도 살 만해"라는 제품이 있고, "이건 그냥 비싸기만 한데"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컨셉"과 "바교 프레이밍"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겹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자는 성분표를 보고 지갑을 열지 않거든요. 오히려 너무 싸면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의심하죠. 가격은 결과가 아니라, 컨셉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가격고하 가치 전략'과 연결됩니다.

왜 같은 기능인데 지갑이 열리는 걸까

제품의 원가나 성분이 가격을 결정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건 소비자가 그 제품을 "어떤 제품"이라고 인식하느냐, 즉 컨셉, 또는 포지셔닝 프레이밍 입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가 제시한 "정신 회계(Mental Accounting)" 이론이 이걸 잘 설명해줍니다[1]. 사람은 같은 금액이라도 어떤 범주에 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낍니다. 5만 원짜리 선크림을 "화장품"으로 인식하면 비싸다고 느끼지만, "피부 보호 솔루션"으로 인식하면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거죠. 마트에서 3천 원짜리 생수는 비싸다고 느끼면서, 호텔 미니바에서 같은 생수를 8천 원에 마시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물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 물이 놓인 맥락이 달라진 겁니다.

이걸 실제 시장에서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라운드랩의 자작나무 수분 선크림은 올리브영 어워즈 썬케어 부문에서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 연속 1등을 차지했습니다. 올리브영 기준 1+1 기획 가격이 25,000원대입니다. 편의점 선크림이 5천 원 안팎인 걸 생각하면 결코 싸지 않죠. 하지만 이 브랜드는 단순히 "선크림"이 아니라 "자작나무 수분 + 자외선 차단"이라는 복합 솔루션으로 컨셉을 잡았습니다. 소비자가 이 제품을 넣는 "정신 회계"의 서랍 자체가 달라진 겁니다. "선크림" 서랍이 아니라 "수분 진정 케어" 서랍으로요. 실제로 더마, 진정, 피부 장벽 강화 같은 기능성과 성분에 대한 신뢰성이 K-뷰티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가격을 만드는 세 가지 메커니즘

그렇다면 컨셉,프레이밍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격의 천장을 올리는 걸까요? 저희가 현장에서 관찰한 바를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컨셉은 "비교 대상"을 바꿉니다. "수분 크림"은 편의점 보습제와 비교됩니다. 하지만 "피부 장벽 복원 크림"은 피부과 시술과 비교되기 시작하죠. 비교 대상이 달라지면 가격의 기준점 자체가 이동합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가 여기서 작동합니다[2]. 실제로 2024~2025년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보톡스·리프팅·스킨부스터 시술 경험률이 급증하면서, 뷰티 디바이스와 병행하는 패턴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시술 한 번에 수십만 원을 쓰는 소비자에게, 매일 바르는 크림이 4만 원이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컨셉이 비교 프레임을 바꿨기 때문이에요.

둘째, 컨셉은 "대체 불가능성"을 만듭니다. "수분 크림"은 세상에 수백 개가 있습니다. 하지만 "민감성 피부를 위한 장벽 복원 크림"은 선택지가 확 줄어들죠.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번트 슈밋(Bernd Schmitt) 교수가 강조한 것처럼, 제품의 체험은 단순히 기능적 체험만이 아니라 감각적·감성적·인지적·관계적 체험까지 포함됩니다[3]. 컨셉이 좁고 날카로울수록 소비자는 "이건 나를 위한 거야"라는 관계적 체험을 하게 되고, 다른 제품으로 쉽게 갈아타지 않습니다.

셋째, 컨셉은 "가격의 이유"를 제공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소비자는 비싼 것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왜 비싼지 모르는 걸 싫어하는 겁니다. 오픈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2024~2025년 소비자들은 성분보다 효과나 사용감, 가성비를 더 크게 고려하고 있고, 구매 시 핵심 기준이 후기와 가격으로 이동했습니다. 즉 "좋은 성분을 썼으니 비쌉니다"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유로모니터의 분석에서도 "가격보다는 인식된 가치와 목적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크림은 피부과 전문의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된 제품"이라면, 소비자 스스로가 가격의 이유를 납득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이유가 사실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가짜 스토리는 결국 들킵니다.

컨셉을 언제 만드는게 효과가 있는가

많은 분들이 제품을 다 만들어놓고 나서 "자, 이제 이걸 어떤 컨셉으로 포장하지?"라고 고민하십니다. 효율이 10배는 떨어지는 어리석은 수순입니다.

컨셉이 무조건 먼저 준비돼야 합니다. 의사가 진단 없이 처방전을 쓰지 않는 것처럼, 컨셉 없이 제품을 만드는 건 진단 없이 약을 조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약이 아무리 좋은 성분이라 해도, 환자의 증상과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1만 원짜리가 10만 원처럼 팔리는 브랜드들을 보면, 제품 기획의 첫 번째 단계에서 컨셉을 방치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 제품은 누구의,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가." 이 한 문장이 명확한 상태에서 성분을 고르고, 패키지를 디자인하고, 가격을 결정한 겁니다. 삼일PwC 보고서에서도 K-뷰티 성장축이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차별화된 제품 콘셉트와 시장 적응력이 높은 중소기업이 수출 증가의 역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아니라 컨셉의 선명함이 승패를 가르는 거죠.

단,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이 전략은 "품질은 평범한데 컨셉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컨셉이 약속한 것을 제품이 실제로 해내지 못하면, 그건 사기가 되는 겁니다. 재구매는커녕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죠. 컨셉은 포장이 아니라 설계도입니다. 설계도대로 집이 지어져야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처럼, 컨셉이 약속한 가치를 제품이 증명해야 가격이 유지됩니다. 또 한 가지, 이 접근은 재구매가 거의 없는 일회성 상품에는 맞지 않습니다. 컨셉이 가격을 지탱하려면, 한 번 써본 소비자가 "컨셉이 약속한 게 진짜였네"라고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비교 프레임을 재설계하라

그래서 브랜드 담당자분들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제품은 소비자 머릿속에서 무엇과 비교되고 있나요?

만약 같은 카테고리의 경쟁 제품과 비교되고 있다면, 가격 경쟁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분 크림의 경쟁 상대가 다른 수분 크림인 한, 소비자는 성분표를 대조하고 ml당 가격을 계산하겠죠. 하지만 여러분 제품의 컨셉이 "피부과 시술의 홈케어 대안"이 되는 순간, 비교 대상 자체가 바뀝니다. 가격의 게임이 바뀌는 거예요. 비교 대상이 바뀌면 가격의 의미가 바뀝니다.

WK의 한 마디

"문제는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여러분 제품을 '비교해도 되는 물건'으로 보는 순간, 이미 싸움은 끝난 겁니다."

컨셉이 가격을 올리는 게 아닙니다. 컨셉이 비교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겁니다. 비교당하지 않는 자리를 먼저 설계하세요.


[1] Richard Thaler, "Mental Accounting and Consumer Choice", Marketing Science, 1985 [2] Amos Tversky & Daniel Kahneman,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Science, 1974 [3] Bernd Schmitt, Experiential Marketing, 1999 [4] 오픈서베이 뷰티 트렌드 리포트 2021-2025 [5]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2024년 글로벌 뷰티 시장 하이라이트, 2025년 9월 발표 [6] 삼일PwC경영연구원, "글로벌 판도를 바꾸는 K-뷰티의 힘", Industry Focus,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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